적벽가의 이해

 

 


1) 적벽가의 선택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성인이 되기전에 한번쯤은 읽어야 하는 책을 꼽으라면 삼국지를 들곤한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천하의 패권을 취하기 위해 여러 영웅들의 심리묘사,모험담,지략과모사 들의 활약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삼국시대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삼국지가 고사인 만큼 현재의 나만이 이런 즐거움을 맛보았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이야기가 전해 왔을 당시 그 시대의 사람들도 흥미를 많이 느꼈으리라고 생각 하고 그리하여 우리 대중에 녹아 있는 소리 12마당 중에 한마당을 적벽가가 차지 하고 있지 않나 생각 해본다. 삼국지연의 의 내용중 그시대의 사람들이 각자 얼굴의 모양이 다르듯 성격이나 취향도 다르듯이 그시대 즉 삼국지 이야기가 읽혀 지기 시작한때,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재밌어 한부분을 소리로 만든게 아닐까 생각 해본다. 사실 그부분이 최고영웅들이 크게 활약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삼국지중 가장 좋아하는 방통이 등장한다. 봉추라고 불리기도 하는 불운한 인물이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그시대에 유일하게 제갈량과 필적할만한 인물이라던 봉추가 적벽대전의 중심에 있기에 이번 과제물 주제를 찾던중 12마당중 적벽가를 보고 선택하기로 했다.


2)적벽가의 전래 흐름도




조선시대 판소리 열두마당중의 하나 또는 동리(桐里)신재효가 이를 고쳐지은 판소리의 이름으로 화용도(華容道) 라고도 한다. 중국의 삼국지연의 가운데 적벽대전에 대한것을 소재로 만든것이라 한다. 현재 불려지고 있는 적벽가 중에서 박동진의 적벽가는 정춘풍,박기홍,조학진을 거쳐 전승 되었다한다.박동진의 적벽가는 삼고초려,강능대난,박망파싸움,장판교싸움,군사설움타령,적벽강싸움,화용도로 구성한다고 한다. 유성진이나 송만갑이 부르던 동편제 적벽가를 임방울,김연수,정광수,박봉술 등이 이어졌고 본시 군사의 설움부터 시작하는 민적벽가 였다고 한다.보성소리는 박유전,정재근,정응만을 거쳐 정권진 등에게 이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보성소리는 강능대난과 장판교의 싸움이 없다고 한다.한승호의 적벽가는 이낙치,김채만,박동실로 이어진 서편제 소리라고 한다. 현재는 삼고초려가 없던 적벽가 까지도 삼고초려 부터 시작하는데 앞부분을 새로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적벽가가 불려지는 방식과 내용이 다른것들을 보면은 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구전되어 지는 사람들의 지역에 특색에 맞게 각색 되어지는 성향을 자주 보여진다. 적벽가는 전통적으로 충의(忠義)를 노래 하는 것으로 알려지나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에 의해 전쟁에 동원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민중들의 한과 이에 대한 항의와 풍자 또한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 된다고 한다. 남창 위주의 적벽가는 현대 판소리의 여성화 추세로 인하여 전승 탈락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한다. 1984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선 창극화 하고 신재효가 개작하여 정착시킨 창본 외에 7종 정도의 이본이 전한다고 한다.

화용도, 요러 이본이 전한다고 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성두본(星斗本)을 영인한 자료와 이를 주석하고 이본과의 차이를 표시가 출판 되었다고 한다.

판소리로 불려지는 적벽가 독서물로 읽혔던 화용도 와 마찬 가지로 이작품도 삼국지연의가 판소리화 된것을 신재효가 개작하면서 정착되었다 한다. 신재효의 적벽가는 다른이본과 비교해 볼때 신재효의 적벽가는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작품의 등장하는 인물의 재창조 과정들이라 한다. 조선순조때 송흥록,모흥갑,방만춘,주덕기 같은 명창들이 적벽가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방만춘은 적벽강의 불싸움 대목을 잘하였다고 하고 주덕기는 조자룡이 활쓰는 대목을 잘하였다고 한다. 철종때 명창 박만순,이창운이 적벽가를 잘했고 고종때 박기홍,이동백,김창룡 또한 적벽가로 세상을 울렸다고 한다. 오늘날 전승되는 적벽가에는 박봉술이 보유한 송만갑 바디, 정광수가 보유한 유성준의 바디, 정권진이 보유한 정응민의 바디가 있고 박동진이 짠 적벽가는 조학진 바디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밖의 바디는 거의 전승이 끓어 지고 있다고 한다.

(바디)----명사의 음악, 판소리에서 명창이 스승으로부터 전승하여 한마당 전부를 음악적으로 절묘하게 다듬어 놓은 소리.

바디 마다 사설과 소리가 얼마쯤 다르게 짜여 있지만 초앞,삼고초려,장판교싸움,공명,주유의격동,군사울음 타령 ,조조군사 조련,남병산의 제사,조자룡의 활쏘기,적벽강의 전투 ,오림산중(烏林山中), 군사점고(軍士點考),화용도, 뒤풀이로 짜여진 바디가 많다고 전해진다.

이름난 소리의 대목으로는 삼고초려(진양-우조),고당상(진양-계면조),서름타령(자진모리-우조),적벽강전투(자진모리-우조,계면조),새타령(중모리-계면조),장승타령(중중모리-평도)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삼국지중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크게 패하는 대목이 그내용으로 양반들이 즐겨 들었다고 전해 진다.특히 빠른장단에 웅장하고 씩씩한 호령도를 많이 사용하는 남성적인 판소리이다. 조조가 한없이 격하 강등되어 우스개 거리가 되고 있는점 비장미와 골계미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점 등이 삼고초려에는 장수의 늠름한 자태와 위엄을 느린장단과 배합된 소리와 유유한 소리가 많고 장판교 싸움에는 긴박한 전투 장면이 많다고 한다.


3)삼국지 전래 흐름도


정사 <삼국지>는 이미 고구려 때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지만, 소설 <삼국지>는 이조 초엽에 들어왔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宣祖) 2년(1569)에 국왕까지도 소설 삼국지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에 사대부 층에선 이를 금서로 삼자는 의론이 많고 실지로 금서로 된 적도 있으나, 임진왜란 이후가 되면 민족적 침략과 억압을 당한 상황에서 영웅의 출현을 학수고대하는 민중적 비원과 결합하여 마을 거리의 부인이나 아이들까지도 그 내용을 암송할 정도로 성행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선비들의 과거시험 문장 속에 담기거나 시제(試題)에 오를 정도로 연의 내용이 일반화되었다. 이조 중엽부터 나온 현토본(懸吐本), 번역본은 일제말에 이르기까지 필사본(筆寫本), 목판본, 활자본을 포함하여 23종 이상에 달한다. 그 대중적 인기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그것이 우리의 한문소설, 언문소설에 미친 영향 또한 적지 않음은 이경선(李慶善) 저의 <삼국지연의의 비교문학적 연구>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30여 종의 번역본이 나왔는바 그중 초역(抄譯)이 아닌 것으로 들 만한 것으로 김동성(金東成) 역본, 정음사(正音社) 역본, 김광주(金光洲) 역본, 이용호 역본, 박종화(朴鍾和) 역본, 김용제(金龍濟) 역본, 이성학(李成學) 역본, 김구용(金丘庸) 역본, 이문열(李文烈) 평역본 등이 있는데, 혹 직역에 가까운 노력도 있었지만 일본의 길천영치(吉川英治)의 개작본을 따랐거나 중국의 진순신(陳舜臣)의 개작본을 번역한 것도 있고, 또 너무 현대적인 재해석에 치중하여 재래적인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들도 있었지만 아무튼 삼국지의 대중적인 인기는 오히려 현대에 올수록 더해 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삼국지의 역사 평가에 있어 뚜렷한 경향은 '조조를 내치고 유비를 숭상하는(黜曹崇劉)'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있어 유비는 충후하고 겸양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제왕의 전형이 되고 조조는 기만적이고 잔포하며 권모술수에 능한 간웅(奸雄)의 전형이 된다. 기실 역사를 도덕으로부터 분리시켜 보면 조조가 중국을 또 한 차례 통일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임은 부인할 수는 없다 하겠다. 이 작품이 사상적으로 비판받는 점은 물론 당시의 사회 계급구조에 대한 비판적 안목이 없이 봉건계급의 왕도사상을 민중의 이상으로 일체화시켜 표현했다는 점이다. 노신(魯迅)이 일찍이 지적한, 봉건사회에서는 "기실 왕도라고 하는 것이 티끌만치도 있어본 적이 없다" 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기실 황건(黃巾)을 두른 농민 봉기자들을 도둑떼로 몰고, 그 진압자들을 애국자로 찬양한 것은 당시 봉건사회 속에서는 양해를 받을 수 있는지 몰라도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반(反)진보적 사상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 소설의 예술성의 평가에 있어서는 역사적 사실을 주요 근거로 한 연의(演義)라는 데서 오는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지만, 그 웅후(雄厚)하고 고심(高深)한 필력, 4백여 인물들의 형상을 창조적이고 생동되게 빚어낸 점, 이야기 줄거리의 조직 수완과 분위기를 조성해 내는 뛰어난 운필(運筆) 능력, 능수능란하고 다채로운 전쟁 묘사, 여러 계층에서 공히 받아들일 수 있는 문언과 백화(白話: 구두어)가 엇섞인 살아있는 언어의 구사 등은 이 소설의 장점으로 높이평가 받고 있다.


2.삼국지연의의 없는 내용인 병사울음 타령



적벽가>는 전쟁의 지도자와 그 부하인 장군들과 병사들 사이에 얽힌 이야기이다. 본래의 『삼국지연의』가 영웅들의 호쾌한 싸움이며 사실에 따른 대국적인 웅대한 전쟁이야기라면, <적벽가>는 평범한 인간의 싸움이거나 장군, 동물, 장승 등 비현실적인 모순되는 갈등이야기이다. 달리 말하자면, 전자는 국가보존과 국가건설이라는 차원에서 무용 있는 인물이 활동하는 데 반하여, 후자는 전쟁으로 보면 극히 소소한 인간적인 문제, 예컨대 효도나 아내 사랑이나 형제우애나 인간의 의리 등에 얽매인, 정에 얽매인 인물들이 활동한다. 요컨대 소설은 전쟁이 재미요, 판소리는 인간사가 재미인 것이다.

군사들이 술을 마시고 신세 한탄하는 장면.-발췌.이완근 이학준의 희망문학


군사들이 싸움에 이기겠다는 기개를 떨쳐 술과 고기를 다투어 먹을 때, 노랩부르며 춤추는 놈, 서럽게 우는 놈, 이야기하며 웃는 놈 노름하다가 싸우는 놈, 반쯤 취한 상태에서 욕하는 놈, 잠이 부족해 서서 자다가 창 끝에 턱이 꿰인 놈, 곳곳에 많은 군사 가운데 병사가 눈물을 흘리면 불행이 닥치는 법이라. 장막 아래서 한 군사가 모자를 벗어 또루루 말아 베고 누워서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서럽게 우니, (병사들의 다양한 모습)


한군사가 내달으며 "아나 이애, 지금 승상은 대군을 거느리고 천 리 밖 싸움터에 나오셔서 아직 승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천하의 큰일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놈 너는 왜 요망스럽게 울고 있느냐? 울지 말고 이리 와서 술이나 먹고 놀자." 저 군사가 잠시 울음을 그치고 말하기를, "네 설움은 일단 제쳐놓고 내 설움을 들어 보아라." (울고 있는 병사를 나무라며 술을 권함)


"고당에 계신 늙은 부모님을 이별한 지가 벌ㅆ  몇 날이나 되며,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신 그 은덕에 보답하고자 하나, 그 은혜가 너무나 크고 끝이 없네그려. 화목하던 일가 친척과 집안의 젊은 아내 어린 자식이 천리 밖 싸움터에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이 올까 내일이나 기별이 올까 하며 기다리다가, 서산에 해가 기울어지니 문밖에서 기다린 것이 그 몇 번이나 될 것이며 바람 불고 궂은 비 내리는 데 대문에 기대어 기다린 것이 그 몇 번이나 될 것인가. 한나라 소무는 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보냈다지만 나는 누구 편에 편지를 보내야 한단 말인가. 임을 그리는 단장의 마음으로 항상 수심에 잠겨 지내고 있다네. 칼과 활을 둘러메고 육지와 물 위에서 적과 싸워야 할 테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아닌가. 만일 객사를 하게 되면 누가 내 시체를 묻어 줄 것이며, 벌판에서 참혹하게 죽은 내 몸이 까마귀와 매의 밥이 된다고 한들 누가 손뼉을 쳐 후여 하고 날려 주리 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나 부모님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네그려." 이렇게 말하면서 서럽게 우니, 여러 군사들이 말하기를 "너의 부모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다." 이때 또 한 군사가 나서며 (고향의 부모를 그리는 사연)


"여봐라 군사들아. 이내 설움을 들어 봐라. 나는 본래 오대 독신으로 어려서 장가를 들었으나 근 오십이 가깝도록 자식을 낳지 못해서 우리 부부가 늘 한탄하며 지내다가, 우리 마누라가 자식을 얻기위해  온갖 치성을 다 드리는데. 이름난 산의 큰 절, 성황 신당, 오래된 사당, 돌부처, 보살 미륵 등에 제사 지내는 음식 마련하기와 사당 짓기며, 칠원성군과 나한에게 불공 드리기. 백일동안 산신제 지내기, 여승에게 가사와 연등 시주하기, 다리놓는데 희사하기와 길닦기 그리고 집에 있는 날은 성조신과 조왕신, 당산, 장독대의 신, 여러 하늘의 신들. 지신 등에게 지극한 정성을 드리니, 공든 탑이 무너지겠으며 심은 나무가 꺾어지랴. 그달부터 태기가 있으니 부정한 자리에 앉지 않고, 바르게 썰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으며,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고, 나쁜 일을 보지 않으려고 극히 조심을 하였다네.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정신이 없는 중에 드디어 해산을 하고 보니, 딸이라도 반가울 판에 아들을 낳았다네그려. 그 애를 어찌나 귀히 여겼던지 땅에 누일 새가 없이 항상 손에 안고 키우는데. 에 이레가 지나고 오륙 개월이 넘어 발바닥에 살이 올라 터덕터덕 노는 모양, 방긋방긋 웃는 모양, 도리도리, 쥐엄잘강, 섬마, 둥둥 재롱을 보며 내 아들 옷고름에 돈을 채여 주고, 감을 사서 껍질 벗겨 손에 쥐여 주니. 밤낮으로 사랑스러운 것이 자식밖에 또 어디 있던가. 그런데 뜻밖에도 "위나라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우러 가자. 나오너라." 외치는 소리에 안 나올 수가 없더구만. 사당에 나아가 통곡하며 두 번 절하여 하직한 후, 연약한 어린 자식과 아내의 등을 두드리며,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 나의 대를 잇도록 해 주오." 생이별하고 싸움터에 나왔으나, 내가 언제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안아 볼 수 있을까. 아이고 내 신세야." 이렇게 말하며 서럽게 우니 여러 군사들이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에라 이놈아, 자식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졸장부나 하는 짓이다. 싸움터에서 네가 죽어도 네 대는 잇게 생겼으니 네 설음은 가소롭다." 그러자 또 한 군사가 나서면서 (고향에 두고온 자식을 그리는 사연)


"나의 설움을 들어 봐라.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일가 친척도 전혀 없어서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롭게 자랐는데, 그런 내가 예쁘고 얌전한 아내를 얻었으니 종가로서의 큰 일을 감당하고, 평생 몸을 의탁하여 편히 지내고 싶어서, 고향 떠날 생각이 젼혀 없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싸울 뜻이 있는 위나라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우러 가자." 외치는 소리가 나를 끌어 내니 어디 오지 않을 수가 있던가. 군복 입고 벙거지 쓰고 창을 쓰고 창을 끌고 나올 적에 우리 아내 그것을 보더니 버선발로 우루루 달려 들어 나를 안고 엎어지며, " 날 죽이고 가면 몰라도 살려 두고는 못가리라. 이팔 청춘 젊은 나를 혼자만 떼어 놓고 어떻게 싸움터에 가려 하오." 울부짖으니 그 때 내 마음이 어떠했겠나. "허허 마누라 울지 마오.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싸움터에 가 보지 못하면 대장부의 절개가 아니라고 하니. 울지 말라면 울지 마오." 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고 화를 내도 소용이 없데그려. 잡았던 손을 후리쳐 떨쳐 버리고 이 싸움터에 나왔지만 세월이 흘러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구먼. 살아갈 방도를 찾고 싶지만 사방에서 지키고 있으니, 함정에 빠진 범이나 그물에 걸린 고기꼴이 되고 말았네, 언제라도 고향에 돌아가게 될지. 아니면 황량한 산에 구르는 해골이 될지. 생사가 아침 저녁에 달려 있네그려. 어서 빨리 고향에 돌아가 그리운 마누라 손을 잡고 쌓인 회포를 풀어 봤으면,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고향의 아내를 그리는 사연)


[아니리 : 판소리에서 연기자가 창을 하면서 사이사이에 극적인 줄거리를 엮어 나가는 사설]


  군사들이 승기(勝氣)내어 주육을 장식하고,


[중머리 장단 : 보통 빠른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서정적인 장면이나 서술하는 대목에 많이 쓰인다.]


  노래 불러 춤추는 놈 서럽게 곡하는 놈 이야기로 히히 하하 웃는 놈 투전(鬪錢)하다 다투는 놈 반취(半醉) 중에 욕하는 놈 잠에 지쳐 서서 자다 창 끝에다가 턱 꿰인 놈, 처처(處處) 많은 군병 중에 병노직장위불행(兵勞則將爲不幸 : 병사가 눈물을 흘리면 앞으로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뜻)이라. 장하(帳下 : 장막 아래)의 한 군사 전립(戰笠 : 군인이 쓰는 벙거지) 벗어 또루루 말아 베고 누워 봇물 터진 듯이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우니, - 병사들의 다양한 모습


[아니리]


  한 군사 내달으며,


  “아나 이애 승상(丞相 : 중국의 옛 벼슬 이름. 여기에서는 조조를 뜻함.)은 지금 대군을 거나리고 천리 전쟁을 나오시어 승부를 미결(未決 : 아직 결정하거나 해결하지 아니함)하야 천하 대사를 바라는데, 이놈 요망스럽게 왜 울음을 우느냐 우지 말고 이리 오느라 술이나 먹고 놀자.”


  저 군사 연(然)하여 왈,


  “네 설움 제쳐 놓고 내 설움 들어 보아라.”  - 울고 있는 병사를 나무라며 술을 권함


[진양조 장단 : '세마치' 장단이라고도 부르며, 가장 느린 장단으로 극적 상황이나 한가한 서정적인 장면에 많이 쓰인다]


  고당상학발양친(高堂上鶴髮兩親 : 머리가 희어져서 늙은 부모가 거처하는 곳.) 배별(拜別 : 배웅하여 이별함.)한 지가 몇 날이나 되며, 부혜(父兮)여 생아(生我)하시고[어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모혜(母兮)여 육아(育我)하시니[어머니가 나를 기르시니 : 시경의 소아편에 나오는 말], 욕보지은덕(欲報之恩德 :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함)인데 호천 망극(昊天罔極 : 끝이 없이 넓고 큼.)이로구나. 화목하던 전대권당(全大眷黨 : 일가 친척.) 규중[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의 홍안 처자(紅顔妻子 : 나이가 어린 처) 천리 전장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 올까 내일이나 기별이 올꺼나 기다리고 바라다가, 서산에 해는 기울어지니 출문망(出門望 : 부모가 문 밖에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춘추 시대 위나라 사람인 왕손가가, 섬기던 민왕이 사냥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으나 임금이 간 곳을 몰라 그냥 집으로 돌아오자, 그 어머니가 "나는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늦게 돌아오면 '대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리고'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 밖에 나가 기다리는데' 너는 임금이 간 곳을 모르는데도 집으로 돌아오느냐?"하고 꾸짖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이 몇 번이며 바람 불고 비 죽죽 오는데 의려지망(依閭之望 : 집 밖에서 기대어 기다림.) 몇번이나 되며 서중의 홍안 거래(鴻雁去來 : 하나라 소무(蘇武)가 흉노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잡혀서 사람이 살지 않는 북쪽  바닷가로 귀양을 갔는데, 사연을 적은 비단을 기러기 발에 매어 자기 나라로 날려 보내 제 처지를 알려서 19년만에 돌아온 것에서 나온 말로 여기서는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전할 방도가 없음을 한탄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이다) 편지를 뉘 전하며 상사곡(相思曲 : 악부신가의 서른여섯 곡중 하나) 단장해(斷腸解 :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그리움.)는 주야 수심에 맺혔구나[오매불망 : 자나깨나 잊지 않음]. 조총(鳥銃 : 임진왜란 때 왜군이 쓰던 총. 적벽 대전 당시에는 없던 무기로 판소리의 구비문학적 성격을 보여 주는 말.) 환도(環刀)를 둘러메고 육전 수전을 섞어 할 제 생사(生死)가 조석(朝夕)이로구나. 만일 객사(客死 : 객지에서 죽음)를 하게 되면 게 뉘라서 암사[장사를 지냄.]를 하며 골폭사장(骨曝沙場 :모래밭에 참혹하게 죽음)에 흩어져서 오연(烏鳶 : 가마귀와 솔개)의 밥이 된들 뉘라 손뼉을 두다리며 후여쳐 날려 줄이 뉘 있드란 말이냐. 일일사친(日日思親 : 매일매일 어버이를 생각함) 십이시(十二時)로구나.[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부모 생각을 하는구나]


[아니리]


  이렇듯이 설이 우니 여러 군사 하는 말이 부모 생각 너 설음이 충효지심 기특허다. 또 한 군사 나서며,


[중머리 장단]


  여봐라 군사들아 이내 설움을 들어라 너 내 이 설움을 들어 봐라. 나는 남의 오대 독신으로 어려서 장가들어 근 오십이 장근토록[가까이 되도록.]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매월 부부 한탄하다. 어따 우리 집 마누라가 온갖 공을 다 드릴 제 명산 대찰(名山大刹) 성황신당(城皇神堂) 고묘 총사(古廟叢祠 : 오래된 사당과 여러 신을 모신 사당) 석불 보살미륵 노구맞이[제사를 지내기 위한 밥차림] 집짓기와 칠성 불공 나한 불공(羅漢佛供) 백일산제(百日山祭) 신중맞이 가사 시주(架裟施主) 연등시주(燃燈施主) 다리 권선(勸善)[다리를 만드는데에 시주함.] 길닦기며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성조조왕(成造 王 : 선조신과 조앙신) 당산(堂山) 천룡(天龍 : 장독대의 신) 중천 군웅(衆天軍雄) 지신제(地神祭)를 지극 정성 드리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신든 남기가 꺾어지랴. 그 달부터 태기(胎氣)가 있어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하고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하고 이불청음성(耳不廳淫聲 : 귀로는 부정한 소리를 듣지 않고)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 눈으로는 나쁜 일을 보지 않고) 십삭[열달]이 절절찬 연후에 하루는 해복기미[해산할 기미]가 있던가 보더라.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혼미(昏迷 : 의식이 흐림) 중 탄생하니 말이라도 반가울 때 아들을 낳었구나. 열 손에다 떠받들어 땅에 누일 날 전혀 없이 삼칠일(三七日)이 지나고 오륙 삭이 넘어 발바닥에 살이 올라 터덕터덕 노는 모양 방긋방긋 웃는 모양 엄마 아빠 도리도리 쥐암잘강 섬마 둥둥 내 아들 옷고름에 돈을 채여 감을 사 껍질 베껴 손에 주며 주야사랑 애정한 게 자식밖에 또 있느냐 뜻밖에 이한 난리 위국 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나오너라 외는 소리 아니올 수 없던구나 사당문 열어놓고 통곡재배 하직한 후 간간한[연약한] 어린 자식 유정한[다정한] 가족 얼굴 누워 등치며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 나의 후사(後嗣 : 자손이 뒤를 잇는 일)를 전해 주오. 생이별 하직하고 전장에를 나왔으나 언제 내가 다시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품에 안고 아가 웅아 업어 볼거나. 아이고 내 일이야.


[아니리]


  이렇듯이 설이 우니 여러 군사 꾸짖어 왈, 어라 이 놈 자식 두고 생각는 정 졸장부의 말이로다. 전장에 너 죽어도 후사는 전하겠으니 네 설움은 가소로다. 또 한 군사가 나서면서,


[중머리 장단]


  이내 설움 들어 봐라. 나는 부모 일찍 조실(早失)하고[중의적 표현] 일가친척 바이 없어 혈혈단신(孑孑單身 :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홀몸.) 이내 몸이 이성지합(二姓之合 : 두 성씨가 만나 혼인함) 우리 아내 얼굴도 어여쁘고 행실도 조촐하야[단정하여] 종가대사(宗家大事) 탁신안정(托身安定 : 몸을 의탁하고 편히 지냄) 떠날 뜻이 바이[전혀] 없어 철 가는 줄 모를 적에 불화병[서로 총포를 들이대며 싸우는 전투] 외는 위국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가자 웨는 소리 나를 끌어내니 아니올 수 있든가. 군복 입고 전립(戰笠) 쓰고 창을 끌고 나올 적에 우리 아내 내 거동을 보더니 버선발로 우루루루 달려들어 나를 안고 엎더지며, 날 죽이고 가오 살려두고는 못 가리다. 이팔 홍안 젊은 년을 나 혼자만 떼어놓고 전장을 가랴시오. 내 마음이 어찌 되겄느냐. 우리 마누라를 달래랄 제 허허 마누라 우지 마오 장부가 세상을 태어나서 전장출세(戰場出世)를 못 하고 죽으면 장부 절개가 아니라고 하니 울지 말라면 우지 마오. 달래여도 아니 듣고 화를 내도 아니 듣던구나. 잡았던 손길을 에후리쳐 떨치고 전장을 나왔으나 일부지전장 불식이라[날이 거듭되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잡았던 손길을 - 불식이라 : 잡았던 손길을 떨치고 전장에 나왔으나 날이 계속되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다.]. 살아가기 꾀를 낸들 동서남북으로 수직(守直 : 지키니)을 허니 함정에 든 범이 되고 그물에 걸린 내가 고기로구나[살아가기 - 고기로구나 : 살아 돌아갈 일을 도모하여도 사방에서 지키고 있어 꼼짝도 못함을 함정에 든 범과 그믈에 걸린 고기로 비유하고 있다.]. 어느 때난 고국을 갈지 무주공산 해골이 될지 생사가 조석이라. 어서 수이 고향을 가서 그립던 마누라 손길을 부여잡고 만단정회[여러 가지의 시름과 그리움] 풀어볼꺼나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아니리 : 판소리에서 연기자가 창을 하면서 사이사이에 극적인 줄거리를 엮어 나가는 사설

 진양조 장단 : '세마치' 장단이라고도 부르며, 가장 느린 장단으로 극적 상황이나 한가한 서정적인 장면에 많이 쓰인다.

 중머리 장단 : 보통 빠른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서정적인 장면이나 서술하는 대목에 많이 쓰인다.

 병노직장위불행 : 병사가 눈물을 흘리면 앞으로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뜻

 승상(丞相) : 중국의 옛 벼슬 이름. 여기에서는 조조를 뜻함.

 고당상학발양친(高堂上鶴髮兩親) : 머리가 희어져서 늙은 부모가 거처하는 곳.

 배별(拜別) : 배웅하여 이별함.

 부혜여 생아(生我)하시고 : 어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모혜여 육아하시니 : 어머니가 나를 기르시니

 욕보지은덕(欲報之恩德) :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함.

 호천 망극(昊天罔極) : 끝이 없이 넓고 큼.

 전대권당(全大眷黨) : 일가 친척.

 홍안처자(紅顔妻子) : 나이가 어린 처.

 출문망(出門望) : 부모가 문 밖에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춘추 시대 위나라 사람인 왕손가가, 섬기던 민왕이 사냥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으나 임금이 간 곳을 몰라 그냥 집으로 돌아오자, 그 어머니가 "나는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늦게 돌아오면 '대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리고'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 밖에 나가 기다리는데' 너는 임금이 간 곳을 모르는데도 집으로 돌아오느냐?"하고 꾸짖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의려지망(依閭之望) : 집 밖에서 기대어 기다림.

 홍안 거래(鴻雁去來) : 하나라 소무(蘇武)가 흉노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잡혀서 사람이 살지 않는 북쪽  바닷가로 귀양을 갔는데, 사연을 적은 비단을 기러기 발에 매어 자기 나라로 날려 보내 제 처지를 알려서 19년만에 돌아온 것에서 나온 말.

 상사곡(相思曲) : 악부신가의 서른여섯 곡중 하나.

 단장해(斷腸解) :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그리움.

 조총(鳥銃) : 임진왜란 때 왜군이 쓰던 총. 적벽 대전 당시에는 없던 무기로 판소리의 구비문학적 성격을 보여 주는 말.

 암사 : 장사를 지냄.

 골폭사장(骨曝沙場) : 모래밭에 참혹하게 죽음.

 오연(烏鳶) : 가마귀아 솔개

 일일사친(日日思親) : 매일매일 어버이를 생각함.

 장근토록 : 가까이 되도록.

 고묘 총사 : 오래된 사당과 여러 신을 모신 사당.

 노구맞이 : 제사를 지내기 위한 밥차림.

 다리권선 : 다리를 만드는데에 시주함.

 성조조왕 : 선조신과 조앙신

 천룡(天龍) : 장독대의 신

 해복기미 : 해산할 기미

 간간한 : 연약한

 유정한 : 다정한

 후사 : 자손이 뒤를 잇는 일

 탁신안정 : 몸을 의탁하고 편히 지냄

 불화병 : 서로 총포를 들이대며 싸우는 전투

 일부지전장 불식 : 날이 거듭되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허니 : 지키니.

 만단정회 : 여러 가지의 시름과 그리움

 잡았던 손길을 - 불식이라 : 잡았던 손길을 떨치고 전장에 나왔으나 날이 계속되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다.

 살아가기 - 고기로구나 : 살아 돌아갈 일을 도모하여도 사방에서 지키고 있어 꼼짝도 못함을 함정에 든 범과 그믈에 걸린 고기로 비유하고 있다.


'적벽가'중 유명한 군사 설움 대목이다. 적벽가의 원전(原典)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없는 것으로 판소리 창자(唱者)들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吳)나라와 대치하여 일전(一戰)을 벌이기 직전의 상황, 이른바 적벽 대전(赤壁大戰)의 전야(前夜)에 조조의 군사들이 제각기 설움을 늘어놓는다. 이들의 설움은 고향의 부모?처자를 이별하고 전쟁터에 나온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어서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설움이다. 더욱이 이들은 다음 날이면 제갈공명의 동남풍을 이용한 주유의 화공(火攻)에 죽거나 부상당할 운명이어서 그 슬픔은 더욱 고조된다.


4).작품 해설

“적벽가”는 애초에는 “화용도 타령”이라 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처음부터 ‘적벽 대전’ 직후 조조의 화용도 패주 대목까지를 바탕으로 하되, 그 내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크게 변화시켰다. 즉, 삼고초려, 장판교 대전, 동남풍 비는 것, 적벽 대전, 화용도 패주 등의 삽화는 <삼국지연의>에 있는 것이지만 원작의 내용을 상당한 정도로 바꾸었다. 그리고 군사 설움과 군사 점고 등 원작에는 없는 것을 많이 만들어 넣었다.

여기에 올린 것은 “적벽가” 중 유명한 군사 설움 대목이다. 전쟁에 강제 동원된 병사들의 신세 타령을 통해 지배자의 야망 실현의 도구가 되어 희생당하는 백성들의 한(恨)을 드러내고 지배 권력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조조라는 천하 영웅을 한갓 필부(匹夫)보다도 더 비겁한 인물로 그린 부분 등에서 허세와 위선으로 뭉쳐 있는 기성 권위와 폭력적인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드러내었다. 여기에 실린 부분은 비장미(悲壯美)의 극치를 보이는 것이지만 “적벽가”를 지배하는 미의식은 희극미(골계미)이다.

그리고 “적벽가”의 원전(原典)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없는 것으로 판소리 창자(唱者)들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넣은 것으로서, 외국 문학에 대한 주체적 수용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하다.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吳)나라와 대치하여 일전(一戰)을 벌이기 직전의 상황, 이른바 적벽 대전(赤壁大戰)의 전야(前夜)에 조조의 군사들이 제각기 설움을 늘어놓는데, 이들의 설움은 고향의 부모․처자를 이별하고 전쟁터에 나온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어서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설움이다. 더욱이 이들은 다음날이면 제갈공명의 동남풍을 이용한 주유의 화공(火攻)에 죽거나 부상당할 운명이어서 그 슬픔은 더욱 고조된다.

여기에 올린 부분을 자세히 감상하면 다음과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향의 부모형제, 일가친척에 대한 그리움으로 병든 한 군사의 신세 한탄이다. 전투를 앞둔 긴장된 때에 드러누워 크게 울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전쟁과, 전쟁을 주도하는 지배자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데. ‘부모 생각 너 설움이 충효지심 기특허다.’라고 하여 아무 관계 없는 ‘충(忠)’을 들먹거리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중국 고사를 인용하고 있지만 원전인 <삼국지연의>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내용으로 판소리의 독창성과 판소리 창작층이 지녔던 문화 수용의 주체적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어서, 오대 독자가, 온갖 정성을 다 들여, 그것도 오십이 다 되어 얻은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는 내용이 나온다. 자식을 얻기 위해 들인 공력, 어린 아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 그 자식에게 기울인 지극한 정성과 절절한 애정 등을 자세히 제시함으로써, 역으로 전쟁과 전쟁을 이끌고 있는 지배자에 대한 불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또,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호소하는 군사의 신세 한탄이 나온다. 부모 조실하고 일가 친척도 하나 없는 외로운 처지에 행실도 단정하고 얼굴도 어여쁘며 집안일도 잘 처리하는 좋은 아내와 만났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그럼에도 징병령(徵兵令)에 끌려 전쟁터에 나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 놓였으니 그 억울함과 서러움은 하늘에까지 닿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같은 억울함과 서러움을 실감나게 제시해 전쟁과 전쟁을 주도하는 지배자를 비판하는 것이다.


5).창작 배경 및 인물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吳)나라와 대치하여 싸우던 적벽 대전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변용(變容)한 것이다. 적벽 대전의 전야(前夜)에서 조조의 군사들이 제각기 고향의 부모, 처자를 이별한 설움과 애틋한 사연들을 늘어 놓은 사설들이다. 그런데 그 인물들은 판소리 창자가 창안한 인물들이다. <삼국지연의>의 처음부터 적벽 대전 직후 조조의 화용도 패주 대목까지를 바탕으로 하되, 그 내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또, <삼국지연의>에 없는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기존의 인물을 변화시켜 <삼국지연의> 영웅들을 보통 병사들로 변용하여 그들의 사연을 토로하게 한다. 조조는 매우 희극적인 인물로 만들고 그 모사(謀士)인 ‘정욱’을 춘향가의 ‘방자’와 같은 인물로 변용시키고 있다.

이것은 판소리가 영웅 서사시가 아니라 민중의 노래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외국 문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서민 의식을 반영한 좋은 예가 된다고 하겠다.


6)판소리 및 판소리계 소설의 소설사적 위치

판소리계 소설은 대체로 판소리 사설이 독서물로 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판소리는 공연 예술로서 당대의 역사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런데 판소리가 기반으로 한 역사적 현실은 당시 역사적 주체로 성장하고 있던 평민들의 생활이었다. 판소리는 점차 양반들까지도 청중으로 끌어들이게 되면서 상층 문화적 요소들도 갖게 되지만, 평민 중심적인 기본적 세계관은 바뀌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지배하는 것은 서민층의 현실주의적 태도이다. 서민들의 삶의 고통을 해학과 신랄한 풍자로 속시원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령, “수궁가”의 경우, 토끼의 현실주의적 행위를 통해 별주부(자라)의 봉건적 충의 사상(忠義思想)이 얼마나 허무한 망상인가와 현실 권력의 무능까지도 보여 주고 있고, “배비장 타령”에서는 양반 지배층에 대한 서민의 저항 의식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춘향전”에서 변학도에 대한 춘향의 반항이 그 한 예이다. 여기에서 조선 후기 서민 의식의 성장이 반영되어 있다.

text by cho ri




by 서생의눈 | 2008/10/28 16:02 | 기술

일본인 장수가 본 이순신 .....퍼온자료입니다..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장군에 관한 기록
포커스/토론에서 퍼온 정말 명문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 이라는 책이 있읍니다.
이 책은 1990년~1998년 ...약 8년에 걸쳐서 중국학자5명과 일본학자7명 그리고 그 외 일본사관학교 (육사.해사) 장교및 중국인민박물관장. 한국해군사관학교장교들의 도움으로 총 32권으로 발권 된 책이죠
이 책은 크게 이순신 장군 생애를 다룬 5권.(이순신은 누구인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2권 . 명나라가 본 이순신1권.
1500~1600년시대의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나라 10권.
이순신과 임진왜란 5권. 토요토미 대 이순신 2권.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내용이 25권.
그리고 역사적 근거로 가설을 부친 내용이7권으로 나누어 진 책입니다.
이중에서 좀 특이한 것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장군님에 관한 책이 2권이나 된다는 것인데...
이순신 장군께서 난중일기를 남기시듯.. 일본장수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서적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와키자카와. 도도. 등등 .....특히 이 두 사람은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기록이 유별 나다고 합니다...아마 같은 수군이라서 그랬겠지요...
 
1. 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전에 kbs1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와키자카 후손들이 매년 이순신 장군님 탄생 때 온다는거....와키자카가 이순신 장군님을 알게 된 건 한산도 대첩 때인데... 와키자카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성격이 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바라보는 것과 일본에서 바라보는 건 차이가 있겠지만...아무튼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였는데, 명예를 중요시하였으며, 차를 좋아했으며, 함부로 살생하기보다는 덕을 베풀어서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뭐 랄까 그런 묘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2천의 군사로 약 5~10만명(정확한설은 없음. 우리역사에는 5~6만 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이라고 함)정도 되는 조선육군을 물리친 명장 중에 명장입니다... 그러한 명장이 듣지도
못한 장수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를 하였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한 예로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 였을 거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갔다.)
2천의 군사로 5만 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 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 번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지만 와키자카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글이죠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이순신 장군님 탄생일 때
오는가 봅니다
 
2. 명의 사신이 본 이순신
그리고 "운덕 " 이라는 명나라의 사신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후일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하루는 어두운 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 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 듯 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 속을 통제사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 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 바람 속으로 거닐고 있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한번 따라가 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 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현장으로 가는 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 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 중 효행 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이더라...10살 의 어린 나이에 병사가 되어 왔음에 이 아이가 포로가 된후 이를 딱히 여긴 통제사영감이 별도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10살에 포로가 되었으니 벌써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왜군의 아이는 조선말을 배웠으며
간간히 통제사 영감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사람을 보면 누가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내가 본 저 두사람은 조선 장수대 왜군이 아닌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통제사 염감이 저러하다면,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3. 명의 도독 진린이 본 이순신
명나라의 황제 신종(만력제)은 조선에서 진린도독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는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튀어날 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루 지닌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 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 하옵 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 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 척 만이 남았으며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 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 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 옵 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 이순신 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 폐하게 충(忠)을 다 할것이 옵니다.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4. 책의 저자인 쟝웨이링 교수가 본 이순신
1990년 3월 하북에서 제1차 중.일 합동 연구회(이순신)를 가졌다. 이순신??? 내가 알고있는 이순신은 조선시대 임진 왜란때 장수였던거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이 연구회엔 나의 절친한 동료학자의 권유로 참석하였으며 그해에 그저 잠시나마 자리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사실 조선의 역사에 대해선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던터라,
나는 그저 일본교수진들의 말만 들을뿐..... 그러한 내게 작으나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화면 가득 보여지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북선이라고 불리는 배였다.
저런 배가 400여년전에 있었단 말인가...(본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시각으로 보고있었다. 아무리 나라가 다르다지만... 그 시각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고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차이는 중일간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보는 것.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이 아닌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을 보는 것이었다. 일본교수진들은 이 연구회를 이순신이라고 붙였다.
즉.. 임진왜란 자체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서 바라보고 찾고 연구하고 가설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 중국 어느 누구에게도 연구해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는 그 학술회가 끝나는 데로 일본교수의 도움으로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한 책자를 얻을 수 있었다.
7권으로 이루어진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관한 책이었고. 나는 그7권을 단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으며, 책을 손에서 놓은뒤 내게 있어서 가느라한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순신....참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은 인물.지금까지 우리 중국학자들은 임진왜란은 일본의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조선의 왕 선조는 그들을 막지 못하고 의주로 몽진을 하여 우리 명나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명나라는 국력을 소비한 나머지 지금의 청에 의해 멸하고 만다. 이것은 우리 중국과. 한국 북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도 별 차이 없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날 연 학술회에선 이 모든 것을 흔들어버리는 아니 뒤엎는 가설을 내 놓은 것이다.
바로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5. 장웨이링 교수가 말하는 우리의 거북선...
1997년 10월.
한번은 내게 북경대에서 초빙을 받아서 학생들과 토의를 한적이 있었다. 제는 청나라의 멸망에 관해서 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가져 온 거북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 있냐고 묻자 250명의 학생중 단 한 명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하였다.
어쩌면 역사학자인 나도 이 거북선을 이순신 인물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처음 보았으니..학생들이 모른다고 답하는 건 어쩌면 무리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학생들이 이 거북선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볼 기회를 주고 난 후.. 나는 질문을 바꾸어서 왜 청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고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는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으며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질문을 바꾸어서 그렇다면 그 당시 전쟁에서 여러분이 아는 영웅중 단 한 명 다시 태어나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위인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학생들의 답변은 내가 예상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잠시 창 너머를 바라보았고... 한참동안이나 내가 강단의 창 너머만 바라보자. 이에 이상했는지 학생들은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나는 이에 만일 지금 또다시 지금 중국이 청나라처럼 되었고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거라고 답해주자.. 모두들 의아해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어떤 위인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고.. 나는 그 질문에 거북선을 다시 한번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데로 배다.
지금부터 400년전에 만들어진 전투함.. 이 전투함을 만든 이순신... 400년 전에 조선과 일본의 전생 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에 말한다....
많은 학생들과 같이 참석한 많은 다른 교수들도 의아해 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저기서 이순신이 누구냐고 서로 묻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간단히 임진왜란에 대해서 30분 정도 시간을 내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당시 일본과의 전쟁에서의 활약상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순신을 선택한지 아느냐고 물었으나 이 역시 학생중 단 한 명도 알지 못하였다.
단지 어느 한 학생이 교수님 이순신은 해군 아닙니까? 나는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해주었다.
바로 해군이기 때문에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가 망한 건... 아편 탓도 있고.. 황제 탓도 있다.. 정치적 이유도 맞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유능한 해군장교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수군장수 이순신은 5000명도 안 되는 군사와 50척도 안 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도 없이 모두 승리를 이끌어 조선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청국과 같은 처지였다... 당파싸움에 휩 쌓여 있었고.. 병력이라야 5만도 안 되는... 그러한 조선을 이순신장군이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안에는 바로 이 거북선 전투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들은 모두 육지에서 뛰어난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 중국역사에는 세계에 내 놀만한 수군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중국은 대륙국가였다... 하지만 대륙만큼이나 우리 중국은 바다가 넓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들며.. 교수님 그렇다면 주유가 있지 않읍니까? 라고 말하였고 나는 그에 질문에... 주유는 훌륭한 지휘관이다.. 그러나 주유는
이순신 장군과는 격이 다르다.... 주유는 양쯔강에서 활약한 장수지 진정한 해상 지휘관은 아니다..
영국을 보라.. 네덜란드를보라 스페인을보라.. 그들은 나라는 작아도 바다를 가졌기에 그리고 그 바다를 점령하였기에 세계 최고의 국가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청나라는 거대한 대륙국가 이였지만
바다를 몰랐기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년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바다로 바다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열렸던 임진왜란 모의전쟁에서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국에 점령되었다... 라는 결과를 말해주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거북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순신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이 거북선은 내가 여러분에게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그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 거북선은 나대용 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거북선을 생각하고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수군은 임진왜란 1년 전 만해도 허약한 병사들이었으나 그 허약한 병사를 단 1년 만에 40만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나서도 1시간정도 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기를 해주고 강의를'끝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아보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까지도 하면서....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쟝웨이린 교수님은 1989년에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는 주요 책임자중 한분이 였어며, 1990년 이 학술회를 시작으로 해서 연구하시던 중 1995년 고구려 역사 편입하는 작업에서 손수 물러 나셨다고 한다. 쟝웨이린 교수님은 이 책 머릿말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역사학자란 후세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란 두 가지의 부끄러움이 있다.
한가지는 숨기는 것이다. 히틀러가 200만 유태인을 죽인 것 보다 그 역사를 감추려하는 역사학자들이 더 부끄러운 것이다. 나의 조국의 부끄러움보다 역사 앞에서 그 진실을 숨길 때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또 한가지의 부끄러움을 말한다면,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정한 위인은 자기가족만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전한 위인이란 모든 만인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이며..나는 그 위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6. 일본의 아리모토라는 역사가가 본 이순신
세계의 전쟁영웅은 피로 만들어진다. 전쟁영웅은 만인들에게 우러러 보게끔 만든다. 알랙산더 대왕도 그러했고 케사르도 그러하였고, 징키스칸도 그러했고, 나폴레옹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이러한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크리스챤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그분....
이순신 장군을 볼 때면 문득 그분이 떠오른다.... 두 분다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순신 장군은 단순히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피로 혁명을 일으키기보다는 바로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시고 가셨다.
이순신 장군은 그 처절한 전쟁 속에서 忠.孝.義.愛.善 을 가르치신 분이 섰다.
그러고 보니 한국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영웅 이순신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성웅 이순신"

7. 장군님의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1996.4월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중에서 14부인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 중에서 .....
 
< 혁 명 과 죽 음 >
이순신의 혁명..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수많은 전공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는 단 한번이라도 혁명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먼저, 우린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이순신 장군은 혁명에 성공과 함께 조선의 멸(滅)과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 장군에겐 2만여명의 수군과 약 5천여 명으로 추정 대는 의병.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이남. 경상도부근에 이순신을 따르는 군(軍)의 수는 1만 여명에 이른다. 총 3만 5천 여명에 다다르고 이 군대에 대응할 조선의 군대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순신에겐 두 가지의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심과 명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명나라의 군대였다. 명나라 군대 역시 이순신에 대한 반감이 컸으며, 명나라의 장수 유정은 바로 곧 명나라의 황제를 대신 하는 것이기에 이순신에겐 유정을 넘어서야 1차적인 혁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혁명 후 명나라 황제의 질타를 과연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였다.
조선의 왕 선조는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키자 바로 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을 것이다.
명나라의 황제가 도와준다면 이순신의 군대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자신을 도와줄 군대가 올거라 생각지만, 뜻밖에도 명나라에서는 군대가 아닌 사신이 온다.
조선 조정으로가 아닌 명나라의 장수 유정에게........ 명나라의 황제는 조선의 왕 선조가 아닌 이순신 통제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왜 였을까?이 역시 답은 간단하였다. 그 당시 명나라의 국력은 임진왜란(정유)으로 인하여 국력이 크게 약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북으로의 오랑케(훗날 청)의 견제가 심해져 있었으니.. 전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강력한 이순신 군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일 일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나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이미 조선의 민심 역시 이순신에게 있는 것을 알기에)
바로 이순신에게 손을 들어 주는것.. 이것은 또한 명나라에게도 커다란 이득인 것이다...
힘없는 선조가 조선의 왕이 되기 보다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이순신을 도와 그에게 왕의 자리를 주고 그 이순신의 군대로 하여금 후에 명(明)을 위협하는 오랑케를 견제 하자는 것이다.
명나라의 문록(文錄)을 보면.
조선으로 건너간 명나라 장수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에 의하면.. 폐하 이 전란이 끝나면 즉시 조선의 수군 통제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부르소서 그로 하여금 북의 오랑케를 견제토록 하소서.. 이순신 통제사는 능히 우리 명(明)의 후환을 없애 줄 것이라 신(臣) 진린은 굳게 믿사옵니다....등등)
이에 명(明)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의 군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자 라는 대신들의 논의(論議)가 이었음 알 수 있었다.
이는 이미 명나라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왕 선조에게 우리 명(明)의 도움을 받았으니 조선도 명(明)을 도우라...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오라 하라. 이미 각본은 짜여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혁명을 하든 안 하든... 이미 명나라에서는 훗날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혁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 이었다. 왜였을까?
중국역사 조선의 역사..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런 한 일에는 반드시 쿠테타든 혁명이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니면 토사구팽이라도....그런데 이순신은 쿠테타도 혁명도 토사구팽도 모두 거절하였다. 이순신은 오직 죽음만을 선택 한 것이었다. 이순신 과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에서는 명나라가 이순신장군님을 끌어들여서 북의 오랑케(훗날 청나라)견제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들은 단순히 이순신 장군께서 혁명을 이룩하면 조선이 발전되었을 거라고
단정을 내리곤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정세란 매우 이해관계가 복잡한 일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어쩌면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셨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키고 명나라가 이순신을 도와줘서 낭떨어지에 몰린 조선왕 선조와 조정대신(이순신의 반대파세력)들이 뜻밖에 도일본과 손을 잡게되고 비밀 협약을 한다면...과연 조선은 어떻해 되었을까 하는? 혹시.. 이순신장군은 그러한 모든 과정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이순신 장군은 너무나도 치밀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드라마를 보고 흥분해서 가설을 내세우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정확히 아셨던 분이십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 장군님께 질문을 던져 봅니다
장군님 당신은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도 두려워셨읍니까? 조선이 피로 물들여질 것이라는 걱정이 그리도 두려우셨읍니까?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신 건가요?
2000년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장군님도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건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일을 주관 하셨지만 미약한 인간의 몸이셨던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당신 앞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립니다...장군~~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책이 총32권... 그것도 한국 학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학자들에 의해 저서가 된 책...... 그들은 우리를 알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린 저들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역사에 대해서만큼은 더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참고: 이순신 장군 가계 (참조글 주소 참고)
그의 가계는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로부터 내려오는 문반(文班)의 가문으로, 이순신은 그의 12대손이 된다. 그의 가문은 4대 때에 조선왕조로 넘어오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5대조인 변(邊)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와 홍문관대제학을 지냈고, 증조부 거(#거21)는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할아버지 백록(百祿)이 조광조(趙光祖) 등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주장하던 소장파사림(少壯派士林)들과 뜻을 같이하다가 기묘사화의 참화를 당한 후로는 아버지 정도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던 만큼 이순신이 태어날 즈음에 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그러하였음에도 그가 뒤에 명장으로 나라에 큰공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유년시절에 어머니 변씨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때문이었다. 변씨는 현모로서 아들들을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가정교육을 엄격히 하였다.
그는 위로 희신(羲臣)·요신(堯臣)의 두 형과 아우 우신(禹臣)이 있어 모두 4형제였다. 형제들의 이름은 돌림자인 신(臣)자 위에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에서 복희씨(伏羲氏)·요(堯)·순(舜)·우(禹)임금을 시대순으로 따서 붙인 것이다.
그의 시골 본가는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백암리이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생가인 서울 건천동에서 자란 듯하다

by 서생의눈 | 2008/02/23 16:06 | 기술 | 트랙백 | 덧글(2)

하찮음에서 귀함을 찾아라~

이세상 안의 가치는 모두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그것에 발목을 잡혀 눈빛을 달리하고 대드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것

이 장자의 기본적인생각 이다. 한편 장자는 그곳에서 일보전진 하여 무용{無用}한 것이야 말로 유용한 것이라고 무용의 가치를 적

극적으로 평가하면서 가치관의 연적을 주장했다. 장자는 몇개씩의 우화를 빌어 무용의 용 에대해서 말하고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용한 진량의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옛날에 석이라는 도편수가 제나라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우연히 곡원 이라는 지방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신목 으로서 받들어지고 있었다. 나무가 너무나 거대하여 나무 그늘에 몇천마리의 소를 쉬게
할수가 있었다. 나무의둘레는 백명이 둘러설 만큼 굵었고 높이는 산을 내려다 볼정도였다 지상 칠팔십 척되는곳에 가지가 뻗어 있

는데 한개로 충분히 배를 만들수 있는 크기였다. 그런것이 십여개나 달려 있었다. 그거목을 한번이러도 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끓이지않아 나무주위에는 마치 시장처럼 번성하였다 . 석의 제자 들도 넋이 나간듯이 나무를 보고있었다. 그런데 석만은 거들떠 보

지도 않고 훌쩍 지나쳐 버렸다. 겨우따라 붙은 제자들은 따져물었다 "편수님 ! 편수님로 온다음에 이렇게 훌륭한 재목을 본 적이 없

읍니다. 그런데도 거들떠도 보지않고 가버리다요? 도대체 무슨 소견이 신지요?" 건방진 소리말아라. 저런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느

니라 배를 만들면 가라앉아 버리고 관통을 만들면 당장 썩어 버리지 가구를 만들면 얼마 안가서 부서져 버리고 문짝을 만들면 송진

투성이가 되지 기둥을 만들면 당장 벌레가 먹어버리거든 전혀 쓸모가 없는 재목이야~ 이렇게 크로록 자란 것도 원래 아무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지. 과연 편수답게 제자들과는 보는안목이 달랐다. 그런데 석이 여행에서 돌아온 그날밤 거목의 혼령이 꿈에 나타나

편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너는 대체 나를 어디다 비교해서 쓸모가 없다는 게냐? 어차피 인간에게 소용되는 나무와 비교를 했겠지

하기야 배나무나 추자나무 등 열매가 열리는 나무는 네게 도움을 주겠지 그러나 열매를 맺기 때문에 가지를 꺽이우고 열매를 빼았

긴 끝에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죽지않으면 안되 거든" 스스로의 장점이 스스로의 목숨을 단축시키고 있는것이다 즉 자기가 원해서

계속 짓밟히고 있는것이다. 이세상속의 인간과 사물들도 모두 유용해지려고 함으로써 똑같은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 하고있지 그러

나 나는 다르다 나는 오늘날까지 일괄해서 무용한것이 되려고 노력해왔지 천수를 다하려는 지금에 와서 겨우 무용의 나무일수가 있

었다. 가령 내가 유용했다면 벌써 꺽이고 부러졌을것이다 그 거목이 하는말은 장자가 하고싶은 말일것이다 즉일부러 유용한 나무가
되는것을 구하지 않고 무용에 철저했지 때문에 장수를 누릴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장자에는 작자적인 장자라는 인물과 그논적인 혜

자라는 인물의 논쟁이 많이 실려 있는데 다음 이야기도 그가운데 하나이다 언젠가 혜자가 장가의 주장을 비판했다 당신의 이론은

현실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소 그러자 장자가 가차없이 반박했다 무용이 무엇인가를 아는 인간만이 유용한 것에 대해서 말할 자

격을 갖고있소 . 가령말일세 우리들 두 사람이 서 있는 이 대지 는 무한히 크오 그러나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것은 발로 딧고설 조

그마한 공간에 불과하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크기 만큼만 남겨놓고 주위를 땅밑바닥까지 파버리면 어떻게 되겠소 ? 그래도 남

은 부분이 우리에게 도움이될까요? 그야 도움이 될턱이 없지요 .... 그것보시오 무용한것 이야말로 진정으로 유용하다는 것을 그것

으로 알수 알 수 있잖소,,, 과연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들 주위를 다시 살펴보면 무용한것이 쓸모있는 역활을 담당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다만 우리들이 유용한것에만 눈을 빼앗겨 그것을 깨닫고 있지 못한것뿐이다 아닌가?? 장자도 사람들이 모두 쓸모있

는 것만을 쓸 줄알고 쓸모 없는것을 쓸 줄 모른다..고 한탄 하고있다. 인간도 오로지 유용성만 추구하는 인간은 장래의 대성을 기약

할수가 없을 것이다 장자가 말하는 무용의용 을 발견 할수가 있다면 필연코 인생에 새로운 전망이 틀림없이 열릴것이다..

by 서생의눈 | 2008/02/23 16:01 | 의지 | 트랙백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알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흐트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알아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듣이

 

한번 불타 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게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 버리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 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전진 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 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 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져버림 없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하지 말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중에서(남전 대장경의 시경 중~~)

by 서생의눈 | 2007/01/15 15:16 | 의지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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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게으른 사람을 위한 잠과 꿈의 명상" (정신세계사刊, 텐진 완걀 린포체 지음 홍성규 옮김)을 읽었습니다. [잠자면서 수행하는 티베트 명상법]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듯이 우리 인생의 3분의 1을 잠자면서 보내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별도의 시간을 내지 않고도 잠자면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가르침은 우리가 경험하는 이 모든 세계를 꿈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며, 향후 죽음의 순간에 바르도에서의 경험을 매일매일 꿈속에서 수행케 하는 것입니다.
수행 내용중 대상을 집중하면서 시각화하는 기법들과 명료한 꿈을 꾸게 하는"티베탄 루시드 드림"의 수행법의 일단을 짐작해 볼 수 있어 흥미로왔습니다.

여기 책 내용중 수행방법 요약 내용을 옮깁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옴 마니 페메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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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명상 수행의 요점

▶ 에 하는 기본 수행

카르마의 흔적을 바꾸기
하루종일 모든 경험을 꿈으로 여깁니다. 마주치는 모든 것을 꿈에 본 것으로 여기고 일어나는 모든 일도 꿈속의 일로 여깁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꿈에 나타나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의 육체를 투명한 환각의 육체로 떠올립니다. 온종일 명료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꿈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꿈속에 있다는 말을 뜻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꿈이라고 말할 때, 진정으로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육체와 감각이 지금 현재에 존재하도록 합니다.

집착과 혐오를 없애기
욕망과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대상과 부딪치면 그것을 꿈속의 덧없는 현상으로 여깁니다. 현상을 마주하는 자신의 반응도 꿈입니다. 감정, 판단, 애착이 모두 꿈속의 일입니다. 자신의 반응이 꿈이라는 것을 되새길 때, 욕망이나 집착이 줄어든다면 이 수행을 올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염원을 키우기
잠들기 전에 하루를 되돌아보고 수행이 어떠했는지 다시 짚어 봅니다. 하루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이 꿈의 기억이라는 것을 되새깁니다. 밤의 꿈을 바라보려는 염원을 강하게 합니다. 가슴 깊은 곳에 이러한 염원을 품으며 성취를 위해 기원합니다.

꿈을 기억하기
수행을 계속하겠다는 염원을 지니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난 밤을 돌아보고 꿈을 기억하고 있거나, 꿈속에서 명료하게 있을 수 있었다면 기뻐해도 좋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명료해지겠다는 염원을 다시 되새깁니다. 수행의 성취를 위해 기원을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강한 염원을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의 열쇠입니다.

▶ 잠들기 전에 하는 수행

아홉 번의 정화 호흡하기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명상의 자세로 앉습니다. 그리고 아홉 번 정화 호흡을 합니다.

스승과 이어지기(구루요가)
구루 요가를 수행합니다. 헌신의 자세를 지니고, 마음을 스승의 순수한 각성에 합일시킵니다. 궁극의 스승은 본래의 깨어있음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본성입니다.

잠자리를 신성한 곳으로 바꾸기
알맞은 자세로 눕습니다. 남자는 오른쪽으로 여자는 왼쪽으로 눕습니다. 주위에 다키니가 에워싸고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떠올립니다. 상상의 힘을 사용해서 자신의 방을 보호받는 신성한 장소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이야기나 떠오르는 모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저 바라봅니다. 그래서 긴장을 풀고 현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꿈을 생생하고 명료하게 바라보겠다고 염원합니다. 그리고 꿈이 일어나는 즉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겠다고 염원합니다.

▶ 중심 수행

중심 에너지 통로에 깨어 있기
목의 차크라에 순수하고 투명한 티베트어의 ‘아’자를 떠올리며 그것에 집중합니다. 티베트어의 ‘아’ 자는 주위에 놓인 네장의 꽃잎에서 색이 비쳐 불그스름하게 보입니다. 그 붉은 빛으로 녹아 듭니다.

명료함을 기르기
대략 두 시간쯤 지난 후에 잠을 깹니다. 사자(Lion)의 자세로 일곱 차례 정해진 호흡의 수행을 합니다. 이마 차크라의 흰 티글레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잠이 듭니다. 모든 것이 그 하얀 빛 속으로 녹아 들도록 합니다. 마지막에는 빛과 온전히 합일되어야 합니다.

현재에 머물기
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잠에서 깹니다. 높은 베개에 기대어 다리를 가볍게 포갭니다. 가슴 차크라에 검은색의 ‘훙’ 자를 떠올리고 그에 초점을 모읍니다. 스물한 차례 깊고 부드러운 호흡을 합니다. 검은색의 ‘훙’ 자에 합일되면서 잠이 듭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다시 두 시간이 지나면 잠에서 깨어납니다. 특별한 자세나 호흡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비밀의 차크라에 있는 빛나는 검은색의 티글레에 초점을 모읍니다. 비밀의 차크라는 성기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검은빛에 녹아 들면서 잠이 듭니다.

※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현재에 깨어서 수행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즉시 현존하면서 밤을 되새깁니다. 염원을 다시 세웁니다. 그리고 하루의 수행을 시작합니다. 덧붙이자면 매일 좌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좌선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며 집중력과 다른 모든 수행에도 도움이 됩니다.

준비수행과 중심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밤이나 낮이나 항상 끊어짐 없이 현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잠과 꿈의 명상에 있어 핵심입니다.

by 서생의눈 | 2006/05/23 00:16 | 트랙백

하버드 대학교


1.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2.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다.

3.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4.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5. 공부할 때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6.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7.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몰라도 성공은 성적순이다.

8.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전부도 아닌 공부 하나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9.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

10. 남보다 더 일찍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 성공을 맛 볼 수 있다.

11.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에서 비롯된다.

12. 시간은 간다.

13. 지금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이 된다.

14. 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15.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

16.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은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다.

17. 학벌이 돈이다.

18. 오늘 보낸 하루는 내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9.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20. no pains no gains 고통이 없으면 얻는것도 없다.

21. 꿈이 바로 앞에 있는데, 당신은 왜 팔을 뻗지 않는가?

22. 눈이 감기는가? 그럼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23. 졸지 말고 자라.

24. 성적은 투자한 시간의 절대량에 비례한다.

25. 가장 위대한 일은 남들이 자고 있을 때 이뤄진다.

26. 지금 헛되이 보내는 이 시간이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겠는가?

27. 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

28. 노력의 댓가는 이유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29.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by 서생의눈 | 2006/05/23 00:14 | 트랙백

병법

가능한 한 자기 나라 가까이에서 포진하여 멀리서 오는 적군을 끌어들여 일(件), 즉 자기 군사는 푹 쉬게 하여 피로한 적군을 기다리고, 배부른 상태에서 배고픈 적군을 맞는다. 이것이 필승의 대비책이다. -오자

군의 가장 큰 재앙은 진퇴의 거취에 갈피를 못 잡을 때 생긴다. 결단을 내렸으면 강행할 일이다.

-오자

나라 전체가 통일된 상태가 아니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군대 내부의 의견이 통일된 상태가 아니면 출진(出陳)해서는 안 된다. 또 작전상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병사 사이에 불화가 있으면 결코 싸움에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오자

도(道)라는 것은 결국은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서 인간의 처음 목적인 근본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그 근본이라는 것은 의(義), 모(謀), 예(禮), 인(仁)의 네 가지다. -오자

목숨을 버리고 싸우면 오히려 살 수가 있고 살아 돌아갈 요행을 바라거나 하면 오히려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 -오자

사람은 항상 불가능한 짓을 억지로 하다가 생명을 잃게 되고, 또 자기에게 불편한 짓을 억지로 해서 패한다. 통솔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부하를 잘 훈련하여 가르쳐 두어야 한다. -오자

싸워서 이기기는 쉬우나 지켜서 이긴다는 일은 어려운 것이다. 지켜서 최후의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일치 단결된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자

의적(義賊)은 예(禮)로써 극복하고 강적은 겸양(謙讓)으로써 극복하고, 강적(强敵)은 외교로써 극복하고 폭적(暴敵)은 속임수로써 극복하며 역적(逆賊)은 권모(權謀)로써 극복해야 한다.

-오자(吳子)

이길 수 있는 조건이 있으면 진격하고 이기기가 어려운 것을 미리 알면 물러난다. 다해이나 요행을 바라고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자

적이 강을 건너가고 있을 때에는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해야 한다. -오자

전쟁에 있어서 승패의 계기는 네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기기(氣機)로 총지휘자의 기분이 사기를 좌우한다. 둘째는 지기(地氣)로 지리 지형의 좋고 나쁨이 전세를 좌우한다. 셋째는 사기(事機)로 군의 상태이다. 위아래의 만족과 불만이 싸움을 좌우한다. 끝으로 넷째는 역기(力機)로, 즉 전력으로서 모든 장비의 우열이 승패를 좌우한다. 이 네 개가 완전하다면 전쟁 태세는 만전이라 할 수가 있다. -오자

전쟁을 일으키는 명목에는 의병(義兵), 강병(强兵), 강병(剛兵), 폭병(暴兵), 역병(逆兵)의 다섯 개가 있다. 다른 나라의 난폭한 백성을 괴롭히는 폭려(暴戾)를 금하고 다른 나라의 동란을 구한다. 이것이 의병(義兵)이다. 자기 나라의 우세함을 믿고 외정한다. 이것이 강병(强兵)이다. 노여움으로 인해 군사행동을 일으킨다. 이것이 강병(剛兵)이다. 예의를 버리고 단지 이익을 구해 싸움을 건다. 이것이 폭병(暴兵)이다. 국가는 혼란하고 민력(民力)이 뒤따르지 못하는데 이것을 동원하여 대외 군사행동을 일으킨다. 이것이 역병(逆兵)이다. -오자

전쟁을 할 경우에는 적진의 강한 곳을 잘 살펴서 그 약한 곳을 쳐야 한다. -오자

점치지 않고도 전쟁을 피해야 할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 적의 토지가 넑고 국민의 수가 많고 또 부유할 경우, 둘째 적의 권력자가 아랫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은택이 고르게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는 경우, 셋째 적의 신상필벌이 적절하게 시행되고 있을 경우, 넷째 적이 어진 자를 임용하고 유능한 인재를 고용하고 있을 경우, 다섯째 군사가 많고 정예한 무기를 준비하고 있을 경우, 여섯째 그 이웃 나라들이 모두 적을 도우고 특히 대국의 지원이 있을 경우 이 여섯 가지이다. -오자

by 서생의눈 | 2006/05/23 00:00 | | 트랙백

병법 -만천과해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라!

 

 

지도자가 주저하고 있다. 목표가 바로 눈앞인데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다. 방법은 한 가지. 어차피 건너야 할 바다라면 참모가 나서야 한다. 두려워 떨고 있는 지도자의 눈을 가리고 두려움을 없앤 후 그를 속여서라도 배를 태워 강을 건너게 해야 한다.


나중에 비록 지도자를 속인 벌을 받더라도 조직의 생존을 위한 참모의 충정을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병법 36계(計) 중에 가장 첫 번째 계책인 만천과해(瞞天過海)의 본 뜻이다.


만(瞞)은 ‘속인다(deceive)’는 뜻이다. 천(天)은 하늘처럼 높은 사람, 즉 천자(emperor)를 뜻한다. 따라서 만천(瞞天)은 ‘천자를 속이다’의 듯이며 과해(過海)는 ‘바다를 건너다’라는 뜻이다. 즉 ‘바다를 건너는 것이 목표라면 신하가 얼마든지 황제를 속여 바다를 건너게 할 수도 있다’는 전술이다.


바다는 건너야 하는데 황제가 바다를 두려워하여 건너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면 유능한 신하는 잠시 오너인 황제의 눈을 가려 앞을 못 보게 하고 바다를 건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 계책은 명나라 때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영락대전(永樂大典)》 당(唐) 태종에 관련된 이야기에 나온다. 정관(貞觀)의 정치로 유명했던 당태종이 30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동쪽을 정벌하러 갈 때 바닷가에 이르렀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한 바다의 위용 앞에서 당 태종은 바다를 건넌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고 주저하였다. 이때 바닷가 근처에 사는 어느 귀족 노인이 황제에게 나아가 자신이 황제의 30만 대군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였으며 황제를 모시고 자신의 집에서 주연을 베풀고 싶다고 청하였다. 황제는 기쁘게 백관들을 데리고 그 노인의 집으로 갔다. 노인의 집은 사방이 오색찬란한 장막으로 덮여 있었는데 노인은 황제를 모시고 실내로 인도하였다.


백관들과 황제는 술을 마시며 노인이 베푼 연회를 즐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파도소리와 함께 술잔이 뒤엎어지고 사람들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당 태종이 깜짝 놀라 보좌관에게 장막을 걷어보라고 명령하였는데 밖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였고 어디에도 노인의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있는 곳은 바로 전함 안 이었고, 30만 대군은 이미 황제와 함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원래 이 노인은 새로 부임한 설인귀(薛仁貴)라는 장군이 분장한 것이었다. 황제가 바다를 두려워하여 건너는 것을 꺼리자 천자를 속이고 바다를 건너기 위하여 ‘만천과해’의 전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군주를 모시는 신하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주저하는 군주를 속이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모가 오너의 눈을 가리고 속이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오너가 분명히 가야 할 길을 앞에 두고 주저한다면 참모는 그대로 주저하는 오너의 결정만 따를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여기서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바다를 건너고 나서 오너가 웃을 수 있는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둘째 조직의 생존과 대업을 완수하기 위한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셋째 개인의 욕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만천과해(瞞天過海).

 

오늘날 하늘이 꼭 황제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은 국민일 수도 있고, 직원들일 수도 있고, 대중일수도 있다. 손자병법의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장군은 모든 병사들에게 일일이 모든 작전을 설명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야할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설득하고 달랠 여유가 없을 때는 잠시 눈을 속이고 일단 강을 건너게 해야 한다. 비록 그런 일로 목숨을 내 놓는 결과가 있더라고 두려움 없이 뜻을 관철시키는 지도자의 모습은 아름다울 수 있다.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넌다.

만은 속인다는 뜻으로, 사건의 설정을 속여서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는 것을 말하며, 천은 천자, 황제를 말하며 본래의 뜻은 각종 기묘한 방법으로 황제의 보고 듣는것을 막아서, 물을 두려워하는 황제로 하여금 배에 올라가게 하여, 그가 알지 못하는사이에 부대를 따라서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는 것을 말합니다

by 서생의눈 | 2006/05/22 23:59 | | 트랙백

와룡선생 출사표~

後出師表

후출사표

 

先帝慮漢賊不兩立,王業不偏安,故託臣以討賊也

선제려한적부량립,왕업부편안,고탁신이토적야

以先帝之明,量臣之才,固知臣伐賊,才弱敵强也

이선제지명,양신지재,고지신벌적,재약적강야

 

然不伐賊,王業亦亡. 惟坐而待亡,孰與伐之,是以託臣而弗疑也

연부벌적,왕업역망. 유좌이대망,숙여벌지,시이탁신이불의야

臣受命之日,寢不安席,食不甘味. 思惟北征,宜先入南

신수명지일,침부안석,식부감미. 사유북정,의선입남

 

故五月渡瀘,深入不毛,幷日而食,

고오월도로,심입부모,병일이식,

臣非不自惜也. 顧王業不可偏安於蜀都,故冒危難以奉先帝之遺意,而議者謂爲非計

신비부자석야. 고왕업부가편안어촉도,고모위난이봉선제지유의,이의자위위비계

 

今賊適疲於西,又務於東,兵法乘勞,此進趨之時也。謹陳其事如左

금적적피어서,우무어동,병법승로,차진추지시야。근진기사여좌

 

高帝明幷日月,謀臣淵深,然涉險被創,危然後安 今陛下未及高帝

고제명병일월,모신연심,연섭험피창,위연후안 금폐하미급고제

謀臣不如良、平,而欲以長策取勝,坐定天下

모신부여량、평,이욕이장책취승,좌정천하

 

此臣之未解一也.

차신지미해일야.

 

劉繇、王朗各據州. 論安言計,動引聖人,群疑滿腹,衆難塞胸

유요、왕랑각거주. 논안언계,동인성인,군의만복,중난새흉
今歲不戰,明年不征,使孫權坐大,遂幷江東.

금세부전,명년부정,사손권좌대,수병강동.

 

此臣之未解二也

차신지미해이야

 

曹操智計,殊絶於人,其用兵也,彷彿孫吳

조조지계,수절어인,기용병야,방불손오

然困於南陽,險於烏巢,危於祁連,逼於黎陽,幾敗北山

연곤어남양,험어오소,위어기련,핍어려양,기패북산

 

殆死潼關,然後僞定一時耳. 況臣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

태사동관,연후위정일시이. 황신재약,이욕이부위이정지

 

此臣之未解三也.

차신지미해삼야.

 

曹操五攻昌覇不下,四越巢湖不成.

조조오공창패부하,사월소호부성.

任用李服,而李服圖之 委任夏侯,而夏侯敗亡.

임용리복,이리복도지 위임하후,이하후패망.

 

先帝每稱操爲能,猶有此失,況臣駑下,何能必勝

선제매칭조위능,유유차실,황신노하,하능필승

 

此臣之未解四也.

차신지미해사야.

 

自臣到漢中,中間期年耳.

자신도한중,중간기년이.

然喪趙雲、陽群、馬玉、閻芝、丁立、白壽、劉合、鄧銅等,及曲長屯將七十餘人

연상조운、양군、마옥、염지、정립、백수、유합、등동등,급곡장둔장칠십여인

 

突將,無前,賓叟,靑姜,散騎, 武騎一千餘人

돌장,무전,빈수,청강,산기, 무기일천여인

此皆數十年之內,所糾合四方之精銳,非一州之所有

차개수십년지내,소규합사방지정예,비일주지소유

 

若復數年,則損三分之二也。當何以圖敵

약복수년,칙손삼분지이야。당하이도적

 

此臣之未解五也.

차신지미해오야.

 

今民窮兵疲,而事不可息

금민궁병피,이사부가식

事不可息,則住與行,勞費正等

사부가식,칙주여행,노비정등

而不及早圖之,欲以一州之地,與賊持久

이부급조도지,욕이일주지지,여적지구

 

此臣之未解六也.

차신지미해육야.

 

夫難平者,事也.

부난평자,사야.

昔先帝敗軍於楚,當此之時,曹操拊手,謂天下已定.

석선제패군어초,당차지시,조조부수,위천하이정.

 

然後先帝東連吳越,西取巴蜀,擧兵北征,夏侯授首.

연후선제동련오월,서취파촉,거병북정,하후수수.

此操之失計,而漢事將成也.

차조지실계,이한사장성야.

 

然後吳更違盟,關羽毁敗,秭歸蹉跌,曹丕稱帝。凡事如是,難可逆料.

연후오경위맹,관우훼패,자귀차질,조비칭제。범사여시,난가역료.

 

臣鞠躬盡力,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非臣之明所能逆竟睹(左者右見)也.

신국궁진력,사이후이, 지어성패리둔,비신지명소능역경도(좌자우견)야.

 

 

 

 

 

 

 

 

선제께서는 한을 훔친 역적과는 함께 설 수 없고, 왕업은 천하의 한모퉁이를 차지한 것에
만족해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여기시어 신에게 역적을 칠 일을 당부하셨습니다. 선제의 밝
으심은 신의 재주를 헤아리시어, 신이 역적을 치는 데에 재주는 모자라고 적은 강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역적을 치지 않으면 도리어 왕업이 망할 것이니 어찌 일어나 치지 않고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이에 그 일을 신에게 맡기시고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그 같은 선제의 명을 받은 뒤로 잠자리에 누워도 편안하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입에
달지 아니했습니다. 북으로 위를 치려하면 먼저 남쪽을 평정해야 되겠기에

지난 5월에는 노수를 건넜습니다.거친 땅 깊숙이 들어가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애쓴 것은

신이 스스로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왕업을 돌아보고, 성도에서 만족해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여겨,
위태로움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선제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게 좋은 계책이 못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적은 서쪽에서 지쳐 있고 동쪽에서도 힘을 다 쓴 끝입니다.

병법은 적이 수고로운 틈을 타라 했으니 지금이야말로 크게 밀고 나아갈 때입니다.

거기에 관해 삼가 아뢰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고제께서는 그 밝으심이 해나 달과 같고 곁에서 꾀하는 신하는

(그 슬기로움이) 깊은 못과 같았으나,

험한 데를 지나고 다침을 입으시며 위태로움을 겪으신 뒤에야 비로소 평안하게 되시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폐하께서는 고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곁에서

꾀하는 신하도 장량이나 진평만 못하시면서도

긴 계책으로 이기고자 하시며 편히 앉으신 채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십니다.

이는 바로 신이 얼른 알지 못할 첫번째 일입니다.

 

유요와 왕랑은 모두 일찍이 큰 고을을 차지하여,

평안함을 의논하고 계책을 말할 때는 성인을 끌어들였으되,

걱정은 배에 가득하고 이런저런 논의는 그 가슴만 꽉 메게 하였을 뿐입니다.

올해도 싸우지 아니하고 이듬해도 싸우러 가기를 망설이다가

마침내는 손권에게 자리에 앉은 채로 강동을 차지하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바로 신이 풀길없는 일로 생각하는 두번째입니다.

 

조조는 지모와 계책이 남달리 뛰어나고 군사를 부림에는 손자·오자를 닮았으나,

남양에서 곤궁에 빠지고 오소에서 험한 꼴을 당하며, 기련에서 위태로움을 겪고,

여양에서 쫓기고, 북산에서 지고, 동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야

겨우 한때의 평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같이 재주없는 사람이 어찌 위태로움을 겪지 않고 천하를 평정하려 들겠습니까?

그게 신이 알지 못할 세번째 일입니다.

 

조조는 다섯 번 창패를 공격했으나 떨어뜨리지 못했고,

네 번 소호를 건넜으나 공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복을 써보았으나 이복이 오히려 뺏어버렸고,

하후에게 맡겼으나 하후는 패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매양 조조가 능력 있다고 추키셨으나 오히려 그같은 실패가 있었는데

하물며 신같이 무디고 재주없는 사람이 어떻게 반드시 이기기만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신이 알 수 없는 네번째 일입니다.

 

신이 한중에 온 지 아직 한 해가 다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운·양군·마옥·염지·정립·백수·유합·동등과 그 아랫장수 일흔 남짓을 잃었습니다.

언제나 맨 앞장이던 빈수·청광이며 산기·무기를 잃은 것도 천 명이 넘는바 이는

모두 수십 년 동안 여러 지방에서 모아들인 인재요 한 고을에서 얻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다시 몇 년이 지난다면 이들 셋 중 둘은 줄어들 것이니 그때는 어떻게 적을 도모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알 수 없는 다섯번째 입니다.

 

지금 백성들은 궁핍하고 군사들은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할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 (할 일을 그만둘 수 없음은 곧) 멈추어 있으나

움직여 나아가나 수고로움과 물자가 드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일찍 적을 도모함만 못합니다.

그런데도 한 고을의 땅에 의지해 적과 긴 싸움을 하려 하시니

이는 신이 알 수 없는 여섯번째 일입니다.

 

무릇 함부로 잘라 말할 수 없는 게 세상 일입니다.

지난날 선제께서 초 땅에서 (조조와의) 싸움에 지셨을 때

조조는 손뼉을 치며 말하기를천하는 이미 평정되었다 했습니다.

그러나 뒤에 선제께서는 동으로 오와 손을 잡고서로 파촉을 얻으신 뒤군사를 이끌고

북으로 가시어 마침내는 하후연을 목 베게까지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조조가 계책을 잘못 세워 우리 한이 설 수 있게 해준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되 뒤에 오가 맹약을 어기매 관우는 싸움에 져서 죽고 선제께서는 자귀에서

일을 그르치시어 조비는 다시 천자를 참칭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니 미리 헤아려 살피기란 실로 어렵습니다.

신은 다만 엎드려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애쓸 뿐 그 이루고 못 이룸,

이롭고 해로움에 대해서는 미리 내다보는 데 밝지 못합니다.

by 서생의눈 | 2006/05/22 23:39 | 의지

에러 검출 방법

데이터 통신에서 에러 검출및 제어방안

개요 DTE간의 데이터 전송에서 회선상 전송 잡음원에 의해 항상 에?발생 가능성이 존재 하므로 전솔로중 에러 발생을 검출 할수있는 방법과 수정 할수있는 방안이 필요함.

에러 검출의 종류

1 패리티 체크방식 (PARITY)=> 발전성 우기성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방식이 전송하는 순간마다 1개의 페리티비트 추가하여 한문자 마다 1의 수가 짝수개여만 하는 방식과 홀수개여만 하는방식 =홀짝여부를 확인 하는방식

2.블럭코드 체크방식=> 수평 페리티 체크방식과 수직 페리티 체크 방식을 통해 수평 수직으로 가능 한문자에서 2개의 비트에러 검출가능

3.순환 임여 검사 CRC

연속적으로 전송되는 일련의 데이터 비크 마지막에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작성된 체크용 비트 시퀸스 FCS를 부여하여 에러를 검출 집단 에러를 검출 할수있는 다항식 코드사용.

에러 종류별 내용 =

에러가 발생해도 전송된 숫자의 앞뒤에 문막에 의해 전송 데이터를 이해할수 있는 통신망의 경우 에러를 무시하고 전송

by 서생의눈 | 2006/05/22 23:32 |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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